짧게 짧게 스쳐가는 장면 속에서
여전히 순서가 뒤섞인 페이지
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
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
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
아뇨, 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날 하늘이 얼마나 눈부셨는지, 노을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는 오직 당신만 보고 있었으니까
당신이라는 책은 나를 온통 사로잡은 책 나라는 책은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바로 그 책 그러나 당신이라는 책은 책으로서만 내 것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라는 책은 절대적인 책 내가 읽는 책은 오직 책이라는 이름의 당신 책에 든 당신은 그것을 읽는 바로 나 당신에게 속한 나는 책 속의 책, 이를테면 각주와 같은 것 책에 사로잡힌 나는 책에서 당신의 흔적만을 좇을 뿐 그러나 당신에게 속한 나라는 책은 한갓 책일 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책 가운데 으뜸인 책인 것과 같이 사랑은 강박 사랑은 당신과 나 사이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 혹은 그것의 기록 당신을 다 읽고 나서, 내게는 군데군데 접히고 밑줄 쳐진 낡은 책 하나가 남았다